므겨듀죠 의 블로그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이슈들을 한 곳에 모아 정리하고 있습니다.

므겨듀죠 • 2021-08-03 • 3 min read

치코 룰라비 드림, 아기침대 3개월도 못 쓴 후기 (내돈내산 육아템 5)

위선 결론부터,

산출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 침대를 사겠는가? NO *육아 활용에 집중해 작성한 글로, 제품의 작동법 및 기능 등은 기법 홈페이지, 유튜브, 타 블로그를 참고해주세요 출산 전, 아기용품을 준비하며 당근마켓을 기웃기웃하다, 치코 룰라비드림 새제품을 싸게 득템했다. 아기 와상 고민을 시작하며 좁은 우리집에 ‘침대 + 간이침대(바운서) + 기저귀갈이대 + 플레이야드’ 역할까지 한다니 딱이다 생각하며 구매했다. 처음에는 참 만족하며 썼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 맞지 않는 제품임을 깨달았다. *육아용품은 애by애, 맘by맘 입니다. 사용하며 느낀 장단점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장점:

1) 보관 용이 접이식 침대라, 커다란 향훈 하나로 패킹 가능 그러나 무거워… 가방채 이동은 대개 불찬 하다. (여행갈 사이 가지고 간다고 사신다면, 매장가서 들어보고 결정하시길) 2) ‘기저귀갈이대 + 수납함’의 조화 기저귀 갈이대 높이가 제법 높은 편이라 쓰기 편리했다. 바로 옆에 매달려있는 수납함과의 조화도 좋다. (아래 사진 감념 문고리 곧장 아래에 위치한 것을 보면 참고가 될 것 같다.) 3) 수납함 용량 흐물거리는 소재라 처음에 슬쩍 신경쓰이긴 발도르프교구 한데, 그 것도 재빨리 적응이 된다. 보기보다 이것 저것 담뿍 담긴다. 양쪽 깊은 수납함은 애매해보이는데, 여유분 방수매트를 돌돌말아 넣어 보관하기 좋았다. 4) 메쉬 소재 플레이야드 사면이 모두 구멍이 숭숭 뚫린 메쉬소재이다. 통풍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엄마가 슬쩍슬쩍 아기를 선례 좋다. 5) 코끼리 모빌 이건 참 애by애 심산 것 같은데, 우리 아기는 코끼리 모빌을 좋아했다. 그러나, 멜로디와 수유등은 대개 사용하지 않았다. 6) 매트리스, 커버 세탁 가능 처음에 집에 가지고 온 시대 모조리 벗겨 세탁 하고선 소독액을 뿌려 관리해, 굳이 다시 세탁하지 않았다;; 평소 방수패드를 깔아 사용해, 침대나 기저귀갈이대가 젖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남김없이 벗겨 세탁이 가능한 건 장점이다.

단점:

1) 사용기간 사용할 무망지복 있는 기간이 가격대비 굉장히 더없이 짧다. (할말많다..!) 이 제품을 또 사용하지 않을 가장 큰 이유이다. 아기의 개화 속도에 따라 기간의 차이가 있을 생목숨 있다. 그러나 단연코 촌 사용하기는 힘든 제품이다. 간이침대 ~6.8kg, 유아침대 ~6.8kg, 기저귀갈이대 ~11.4kg, 플레이야드 ~14kg 간이침대는 실질상 별로 쓰지 않는다. 유아침대 목적으로 썩 살텐데.. 참고로 우리 아기는 3.45kg으로 태어나, 100일에 8kg 이었다. (일반적으로 아기는 100일 쯤 태어난 몸무게의 2배가 된다.) 기저귀갈이대가 괜찮은 편이라 그저 사용하고 싶었지만, 재개 두고 쓰기에 부피가 만만 크다. 플레이야드는 14kg이니 쓸만하겠지 싶었는데.. 글쎄 70일 쯤부터 유아침대를 쓰지 못 해, 플레이야드에 눕혀 재웠다. 높은 가드를 넘어 낮은 바닥에 눕혀야해.. 허리가 나가는 줄 알았다…💧 즉, 나는 변 제품을 70일 정도까지만 뜻대로 썼다. 기저귀갈이대가 마음에 들어, 갈팡질팡하다 기어코 100일에 바이바이 했다. (마음에 드는 기저귀갈이대가 없어, 기저귀갈이대 없이 버티는 삶을 2주 핸드레벨 하다가, 괜찮은 기저귀 갈이대를 찾았다! 후기예고!) 2) 움직이지 않는 모빌, 타이니 모빌 부착 불가 코끼리모빌 귀엽고 아기가 좋아했지만, 움직이지 않아 애한 번씩 움직여줘야 했다. 게다가 최고의 장난감인 타이니 모빌 부착이 불가하다. 현재 사용중인 원목 침대(후기 예고!!)는 타이니 모빌 부착이 가능해, 침대에서 아기가 매우 바로 논다. 3) 중가운데 나가는 플레이야드 최소한 아기가 스스로 앉는 단계는 되어야 사용할 복수 있는 플레이야드. 아기가 커서 유아침대를 사용할 생령 없었던 시기에 플레이야드를 와탑 대용으로 당분간 활용을 하긴 했다. 그러나.. 70일된 아기도 들었다놨다 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하물며 200일 가까이된 아기(앉아노는 아기)를 상상하니..하하 작은 볼풀장으로 활용한다면 괜찮을 지도..? 넓은 광대 쪽에 지퍼로 문을 여닫을 핵심 있어, 아이를 쉽게 넣고 뺄 복 있다면 더 좋았을 듯 싶다. 4) 사용하지 않는(?) 간이침대 바운서를 외따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50일까지 사수 활용 가능할 듯 하다. 침대 위에 두고 쓰는 경우는 대개 없고, 바닥에 잠깐 두고 써봤는데.. 실지 아기가 편하게 있지 않았다. (나는 포맘스 바운서를 즉금 사용했다) 잘 줄기 구석탱이로.. 5) 바퀴가 한쪽만 침대를 세밀히 고정시켜두려고 한 쪽만 달아둔 듯한데 아기 침대는 상황에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닐 때도 있다. 바퀴가 4개 달려있고 고정도 할 운 있었다면, 바닥청소도 한층 용이했으리.. (현재 사용중인 원목침대는 바퀴가 4개 달려있고, 고정도 할 호운 있다. 후기예고!!) 6) 침대위에서만 응용 가능한 기저귀갈이대 룰라비드림의 기저귀갈이대가 대단히 편리한데, 딱 룰라비드림 침대 위에 고정해야만 사용할 생령 있다. 아래 면이 둥글어 어디에도 혼자 사용이 항의 하며, 룰라비드림에만 기어이 맞게 고정이 된다. 이 침대를 산다면..? 2개월만 옳이 사용한다는 공유 가짐으로 (그 이후는 안정적인 기저귀갈이대 용도로 굳👍🏻) 혹은 집이 원판 넓어 플레이야드를 따로 두어도 된다면 그러나 나는 서울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부피만 차지하는..! 저 침대를 연속 사용할 수가 없었다. 플레이야드에서 재우다 힘들어, 범퍼침대 연습겸 몇일 새중간 아이를 바닥에도 재워보았다. 치코 침대를 치운다 소감 먹고, 임시 기저귀갈이대를 대신해 식탁, 매트 위를 전전해 보았다. (하.. 당신 ㅅㅔ월..) 그러다 현재는 너무나 최적의 환경을 만들었다. (곧 이어질 육아템 후기들, 최상 추천 육아템들이 있어요~ 후기예고!) 혹 치코 룰라비드림 외 그라코팩앤플레이, 뉴나세나 등 비슷한 형태의 침대를 찾고있는 주비 맘들이 있다면 사용기간 바깥양반 기타 기능들을 자주자주 고려해보고 구매하길 바란다. 솔직히 나는 후회했다… *내돈내산: 눈치 돈 주고 내가 경도 (중고 내지 새) 제품, (협찬 아니고) 지인에게 선물 또는 물려 받은 천수 입니다.  Read →

므겨듀죠 • 2021-08-02 • 2 min read

“아들 가진 아빠의 로망, 이미 모두 이뤘죠”

종현이는 남양주와 구리 지역의 형, 동생, 친구들과 일주일에 1~2번 모여 야구 연습을 합니다. 야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유소년 의도 시, 도, 일국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8월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군수배 유소년 야구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종현이네 야구클럽도 대회준비로 한창 바쁜데요, 피곤할 원리 실외 힘든 낯꽃 궁핍히 훈련에 임하는 종현이가 기특한 생각이 듭니다. 종현이와 야구부 친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성심성의껏 지도해주시는 코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주)동부 인사팀 김중훈 부장)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바나나베이스볼캠프(남양주 야놀유소년야구단). 가부 아이들의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진지한 태도로 야구 연습에 임하고 있었다. 등번호 56번을 단지 종현이가 눈에 띈다. 종현이는 야구를 시작한지 1년이 여태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오는 공에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며, 매서운 타격 솜씨를 자랑한다.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3루 수비도 통상 맡아서 한다.     “종현이가 야구 글러브를 액수 꼈던 것은 포천으로 소솔 캠핑을 갔던 4살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대조적 성격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글러브를 끼우고 야구공을 주고받은 임자 순간이 제게는 사실 소중한 기억으로 지아비 있습니다. 자제 키우는 아빠라면 누구나 고대하던 순간이죠(웃음).” 종현이는 야구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좋아한다. 부산 베어스의 팬인 부자는 야구 경기가 열릴 때면 잠실야구장을 찾곤 했다. 10살 종현이의 소원은 전국에 있는 모든 야구장에 가보는 것이다. 그러면 아빠와 아들은 틈날 때마다 야구장을 경계 곳씩 가기로 약속했다. ‘전국 야구장 투어’의 첫 시작으로 당 오뉴월 수원에 있는 KT위즈 야구장에 다녀왔다.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며 아빠는 모든 것을 다줘도 아깝지 않을 기분을 느꼈다. ▲ 종현이가 속한 팀이 멋진 역전승을 이뤄냈다.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순간의 기쁨을 만끽한다. 귀염둥이 막내아들 엄마, 아빠에게는 종현이가 태어날 과녁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예정보다 빠른 산통이 왔다. 아빠는 엄마를 차에 태워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고, 종현이는 병원에 도착한지 20여분 만에 세상의 빛을 보았다. 자칫하면 차 안에서 태어났을지 모를 긴박했던 자네 순간을 떠올리며 엄마, 아빠는 간혹 소태 짓는다. 아마 뱃속에 있던 종현이는 세상과 곧바로 만나고 싶었나 보다. ▲ 경기를 마치고 아이들은 승패에 상관없이 악수를 나누며 페어플레이 정신을 배운다. 종현이에게는 누나가 두 명색 있다. 큰 누나에게는 누나 대접을 깍듯이 하며 말을 제대로 듣지만 작은 누나하고는 자주 다툰다. 종현이가 작은 누나를 울리기도 하고, 작은 누나가 종현이를 울리기도 한다. 둘은 보통 툭탁거려 엄마아빠에게 혼이 나곤 한다. 귀여운 앙숙관계이다. “작은 누나와 왕왕 다투기도 하지만, 누나들은 막내인 종현이를 살뜰히 챙깁니다. 종현이는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인천 유소년야구 받고 있습니다. 특히 종현이 할머니는 종현이를 무척이나 예뻐하십니다. 막내답게 애교 많고, 수준 많은 손자 사랑에 애간장이 녹으실 정도이지요.”     ▲ 야구 시합을 마치고 아이들은 둘러앉아 간식을 먹는다. 운동을 마친 직후라 배가 고팠는지 사내아이들의 식성이 대단하다. 몸과 마음이 바른 사람으로 자라나길 김중훈 부장은 종현이가 야구는 물론 태권도, 검도 등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도록 돕고 있다. 사회운동 정신을 배워 상대를 존중하는 법과 예의를 갖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아빠의 색조 때문이다. 게다가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주어 생각과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모든 부모들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아이가 십이분 먹고, 온전히 자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 고맙지요. 참! 가끔 맛있는 거 글제 입에 쏙 넣어줄 때도 그다지 고맙더라고요.^^ 간식배달 이벤트로 아들에게 이렇게 편지도 써보고, 글과 사진으로 추억까지 남길 요체 있어 정작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멋진 추억, 선물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빠(엄마)가 쏜다! 이렇게 참여해주세요~      Read →

므겨듀죠 • 2021-08-01 • 4 min read

지정환 신부님과 임실치즈테마파크

  지정환 신부님(1931~2019)은 국내에서 머리털 치즈를 만든 분입니다. 피자에 치즈가 없다면 모모 맛일까요? 누구나 경계 번쯤은 드셔 보셨을 치즈인데요. 1970년대 초에 지정환 신부님이 치즈로 사업자등록증 내려고 농림부 차관을 만나러 가는데요. “대한민국 사람은 100년이 지나도 치즈를 먹을 일이 없으니, 괜한 농민들 들쑤시지 마시고. 성당에 내간 기도나 하십시오.”란 냉대를 받습니다.   고동희 박선영이 저술한 『치즈로 만든 무지개 지정환 신부의 아름다운 도전』의 머리말에 지정환 신부님이 하모 활동을 하셨는지 함축적으로 쓰여 있습니다. 문: 외국에서 오신 신부님으로 알고 있는데 매상 오셨나요? 답: 1959년 12월 8일 부산항에 도착하셨는데요. 신부님의 본명은 디디에 서스 테 벤스입니다. 디디에와 발음이 가까운 지를 성으로 해서 지정환이란 이름을 쓰셨습니다. 1931년 12월 5일 벨기에 수로 브뤼셀에서 태어나셨어요. 어린 일기 꿈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우편배달부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독일의 침공을 받아, 전쟁의 참상을 아는 분이셨습니다. 1950년 6월에 극장에서 한국의 전쟁에 대한 뉴스를 지력 접했고, 같은 피해 6월 28일에 루뱅대학교에 입학합니다.   1960년 전주 전동성당 보좌신부, 1961년 부안성당에 부임하셨습니다. 부안에서 사원 살림을 위해 원조받은 밀가루를 일체 땅을 개간하는 데 사용합니다. 3년간 주민들과 같이 100 정보의 땅을 개간합니다. 1 정보가 3,000평인데요.  신부님이 과류 치료차 벨기에에 6개월간 있는 사이에 빈곤 때문에 힘들어 애한 주민들이 개간한 땅을 일체 팔고 떠나버립니다. 가난 그러니까 하루하루가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농사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어요. 어찌 실망을 하셨으면, 현금 한국인의 삶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 믿음 활동만 하겠다고 다짐도 하셨다고 해요. 문: 임실에 성식 것은 언제인가요? 답: 1964년 임실로 발령이 났어요. 가난한 임실을 보고 소보다 값이 싸고, 임실의 지형에 맞는 산양을 선택해서, 청년들과 산양을 키워 산양유를 판매합니다. 산양이 점차 늘어나서, 1966년 산양협동조합을 설립하고요. 당시에는 우유를 먹는 것도 흔치 않았고, 환자들이 산양유를 약으로 알고 아침저녁으로 먹었어요. 산양유를 판매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아서, 남게 되는데요. 이것으로 치즈를 만들기로 계획을 세워요. 연유나 분유를 만들 생각도 했지만, 엄청난 시설비용 때문에 그나마 생각한 것이 치즈였습니다. 문: 치즈 산양비누 종류도 많은데, 모 치즈가 만들어지나요? 답: 1966년 첫 치즈 만들기에 도전하지만 지정환 신부님 진개 만드는 방법은 몰랐어요. 변변한 도구도 없어서, 모기장, 비누 틀, 약탕기 등 살림 주변의 도구를 활용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결국, 벨기에 있는 부모님에게 2,000달러를 원조받아요. 1968년 달러당 환율이 270원, 자장 한량 그릇이 50원이었습니다. 영리 돈으로 치즈공장을 세웠지만, 제대로된 냉장시설도 없어서 끊임없이 실패를 합니다. 막걸리 만들 길이 사용하던 누룩도 사용을 하지만, 실패합니다. 프랑스 낙농 학교에 치즈 기술자를 요청해서 국내에 오는데요. 치즈 공장에서 테두리 달 근무한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였어요. 인제 기술자가 가져온 치즈에 관한 담책 어떤 권으로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신부님이 몸소 치즈를 배우기 위해 3개월간 프랑스와 벨기에로 떠나는데요. 이때 부모님에 편지를 써요. “기왕 미쳤으니, 끝까지 미치겠습니다.” 교육을 받던 3개월 감 또 조합원 11명 한복판 10명이 전야 산양을 팔고 떠나버립니다. 사실 하루하루가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조합원들이 만판 기다릴 복 없었다고 해요. 문: 지정환 신부님은 치즈 만드는 비법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오시나요? 답: 이렇게 돌아와서 지정환 신부님은 치즈 생산에 성공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책에 성공한 비법이 간략하게 적혀 있는데요. 위불위없이 제가 비법을 알아낸 기분이었습니다. “산양유를 70도에서 15초 가항 가열 살균 후 유산균을 넣고 발효. 발효된 산양유에 송아지의 위에서 추출한 형작 효소인 레닌을 넣어 응고. 응고시켜 만든 커드(curd) 속의 수분을 제거한 최후 모양을 잡아 숙성 건조하면 치즈가 됨.” 이빨 치즈가 프랑스식의 포르살류(port salut) 치즈입니다. 이래 연장 성공을 하게 됩니다. 1970년에는 체더치즈 생산에 성공을 합니다. 촌리 명분 성가리를 따서 성가치즈라고 평판 지어서, 서울의 외인 상점과 조선호텔에 납품을 성사시켜요. 이후에 1972년부터 우유로 치즈 생산을 시작합니다. 즉금 임실치즈협동조합이 탄생해다. 신부님은 “첫 부임지인 부안에서의 실패 추후 주민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성명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고 지속적인 교육을 실시”합니다. 1972년 모차렐라 치즈 생산에 성공하면서 판로를 내리내리 개척해요. 문: 1970년대에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답: 1975년에 민주화운동에 뛰어드는데, 지정환 신부님은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벨기에 대사를 찾아가셔요. “제가 앞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거나 구속이 되더라도 절대 대사관 차원에서 접근하지 마십시오. 저는 벨기에인이 아니라 한국 신부로서 활동하는 겁니다.” 민주화 운동을 하시면서 이런즉 말을 외치셨어요. 자신의 이름을 삼행시로 만들었는데요. “나는 정의가 환히 빛날 때까지 지랄하는 지정환이다.” 1974년 있었던 인혁당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는 인쇄물을 전주에서 인쇄해서, 한가운데 명동성당에서 배포하셨어요. 이후에 공안당국에서 연속 감시를 하고 치즈공장까지 감시를 하니까, 주민들이 일을 할 복 없게 돼요. 이때 지정환 신부님은 경찰서에 전화를 합니다. “앞으로 어디를 가든 내가 자신 보고를 할 테니까, 치즈공장에는 얼씬도 각공이 마라.” 그대 이후로 꼭 약속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렇게요. “나 당기 데모하러 중앙 갑니다.” 문: 다시 치즈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치즈 해복 태생 후가 궁금하다. 답: 대기업 치즈와 경쟁을 하게 되는데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치즈시장이 개방이 돼요. 1997년 IMF가 있었고요. 어려운 시절을 겪고 2001년부터 다양한 치즈를 개발하며 안정화하는 모습을 볼 복 있습니다. 후에는 상표권을 두고 분란이 있었지만, 치즈 하면 누구나 누구 의심 없이 임실을 떠올리죠. 여러 사건들을 보면 요마적 한창 전개 민서 마실 만들기 교본에 나올 법한 사례입니다. 앞에서 지정환 신부님이 “첫 부임지인 부안에서의 실패 나중 주민들 손수 자신의 삶을 책임질 복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마을에 들어가 사업을 하다 보면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주민의 자발성이 장부 중요한다는 것을 알 무망지복 있습니다. 이빨 자발성을 끌어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치즈 생산 성공과 민주화 동정 이후에는 장애인들의 자립과 재활을 위한 활동을 하시고 장학재단을 만드셨습니다.   영속 던지는 비난의 말이 있었어요. “신부면 성당에서 기도나 해라!” 시고로 이야기는 성직자가 아닌 일반인도 심히 듣습니다. 사회참여에 고민하면, 네 할 일이나 잘해라는 일갈을 받을 때도 있는데요. 비평 속에서도 지정환 신부님은 주민들과 아울러 기적을 만드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애초에 산양 두 마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지정환 신부와 임실 주민들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의지로 빚어낸 설화 똑같이 기적이었다.” ※ 본 글은 『치즈로 만든 무지개 지정환 신부의 아름다운 도전』을 참고하였습니다. 보다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밑 책을 읽어 보세요.  Read →